핵버튼
연애가 조급함의 버튼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설 연휴, 동네 친구들과 모여 반주를 했다. 소주가 몇 잔 들어가자 대화는 결국 뻔한 곳으로 흘렀다. 하나같이 연애 얘기였다. 다들 누군가를 만나지 못해 안달이 난 눈치였다.
나는 그 상황이 웃겨서, 장난처럼 핵버튼 얘기를 했다.
한 명이 버튼을 누르고 연애를 시작하는 순간, 그놈은 일단 무리에서 이탈한다. 그러면 남겨진 쪽에는 묘한 공포가 번진다. 나만 뒤처지는 건 아닐까, 나만 끝까지 혼자 남는 건 아닐까.
꼭 방사능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데도 분명히 퍼져 나가는 조급함이다. 결국 겁먹은 녀석들이 하나둘 아무 버튼이나 눌러대기 시작한다. 정말 누르고 싶어서라기보다, 혼자 남기 싫어서.
다들 낄낄거리며 웃었다.
그런데 술잔을 내려놓는 얼굴들은 묘하게 쓸쓸해 보였다. 웃음 뒤에 남는 그 특유의 허무한 공기. 농담으로 꺼낸 말인데도, 이상하게 다들 그 안에 자기 몫의 진심을 조금씩 들킨 사람들 같았다.
생각해보면 연애를 하고 싶다는 말 속에는 꼭 사랑만 들어 있는 건 아닌 것 같다. 외로움, 비교, 불안, 조바심, 뒤처지고 싶지 않은 마음.
어쩌면 많은 사람은 누군가를 좋아해서가 아니라, 혼자인 자기 자신을 더는 견디기 싫어서 버튼을 누르는 건지도 모른다. 그렇게 시작된 관계가 꼭 틀렸다고 말할 수는 없겠지만, 적어도 내가 바라는 모습은 아니다.
문득 궁금해졌다. 나라고 별수 있을까. 남들 다 누를 때, 정말 나만 끝까지 방독면을 쓰고 버틸 수 있을까. 나도 어느 순간 외로움에 등을 떠밀려, 마치 내 선택인 척 아무 버튼이나 눌러버리게 되는 건 아닐까.
그래도 한 가지는 분명하다.
나는 남들이 누르니까 덩달아 따라 누르는 짓은 하고 싶지 않다. 외로워서, 조급해서, 남들보다 늦은 것 같아서 누르는 싸구려 버튼 말고. 내 불안을 잠깐 덮기 위한 관계 말고.
내 전멸이 아깝지 않을 만큼, 상대를 온전히 아끼는 마음.
계산이나 비교 없이, 내 외로움의 대용품이 아니라 한 사람 그 자체를 사랑하게 되는 순간. 그런 마음 앞에서라면, 그때는 기꺼이 핵버튼을 누르고 싶다.